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르봉 왕조 (문단 편집) === 오를레앙 왕가 === ||<:>[[파일:프랑스 왕국 7월 왕정 국장.svg|width=100%]] || ||<:>프랑스 오를레앙 왕조(1830 ~ 1848) || 현재 기준 부르봉 왕조의 가장 오래된 분가[* 더 오래된 분가로 부르봉-콩데 가문이나 부르봉-콩티 가문도 있었지만 모두 단절됐다.]로 1661년 [[루이 13세]]가 차남 [[필리프 1세(오를레앙)|필리프]]에게 왕자령으로 오를레앙 공작 칭호를 수여하면서 시작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제4차 오를레앙 가문''' 또는 '''부르봉오를레앙 가문'''이라고 한다. 발루아 가문 역시 방계로 발루아-오를레앙 가문이 여러차례 등장했기 때문.[* 대표적으로 [[루이 12세]]가 개창한 발루아-오를레앙 왕조가 있다.] 100년 이상 프랑스의 제2의 왕족가문으로 권세를 누렸고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오를레앙 공작 [[루이필리프 조제프 도를레앙]]이 혁명을 지지하며 왕위를 노리기도 하였다. 1830년 그 아들인 [[루이필리프]]가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왕위를 차지하였으나 1848년 퇴위하며 왕조로서는 1대로 그쳤다. 루이필리프의 사후에는 장손인 필리프가 명목상의 왕위를 이었고 가문 자체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루이필리프의 장증손인 필리프가 자식을 두지 못해 그 사촌동생 장이 계승한 사촌형제 간 승계가 한 차례 있었고, 그 이후로는 계속 부자 승계를 통해 이어져왔다. 현 수장의 할아버지가 5남 6녀를, 아버지가 3남 2녀를 두었고 현 수장 장도 2남 3녀를 두고 있어 가문 자체는 나름대로 번성한 편이다. 그 외에 루이필리프의 차남 루이와(후술할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이 이 계통이다) 6남 앙투안의 가계도 이어지고 있다.] 1883년 부르봉 본가의 [[앙리 5세|샹보르 백작 앙리]]가 사망하면서 위트레흐트 조약과 살리카법 원칙대로라면 부르봉 가문의 수장이 되었어야 하지만, 선대 오를레앙 공작과 루이필리프가 부르봉 본가와 완전히 척을 졌기 때문에[* [[루이필리프 조제프 도를레앙|오를레앙 공 루이필리프 2세]]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고, 그의 아들 루이필리프는 혈통상 앞서는 [[앙리 5세|샹보르 백작 앙리]]를 밀어내고 의회의 지지로 왕위에 오르면서 부르봉 본가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제대로 된 종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현재 부르봉 가문의 수장은 스페인 [[알폰소 13세]]의 증손자이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외증손자인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이 맡고 있다. 그러나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이 만약 프랑스 왕정이 복구된다면 왕이 될 수 있을 지는 불분명하다. 보르본 가문은 루이 14세의 직계이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스페인의 왕위를 얻은 댓가로]] 위트레흐트 조약 (Peace of Utrecht)에 따라 프랑스의 왕위계승권을 영구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보르본 가문은 스페인인이며, 프랑스인오를레앙 가문의 부계 후손이 오늘날까지 파리 백작과 프랑스 왕위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를 자칭하고 있는 점, 오를레앙 가문의 부계 후손이 대통령같은 프랑스 고위 정치인과 종종 교류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분가로 [[브라질]]의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Casa de Orléans e Bragança)[* 기존에는 부르봉브라간사 가문이라고도 한다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스페인계 부르봉 가문 (보르본 가문)의 가브리엘 왕자 (카를로스 3세의 사남)과 마리아 1세와 페드루 3세의 딸, 마리아나 공주이 개창한 보르본브라간사 가문이 있기 때문에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이 부르봉브라간사 가문으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다.]이 있다. 이쪽은 1864년 브라질의 [[페드루 2세(브라질)|페드루 2세]]의 후계자였던 [[이자베우 황태녀]]와 오를레앙 가문의 가스통 공이 결혼하면서 시작되었고 이자베우 황태녀 사후 장남과 차남이 서로 계승권을 주장하여[* 장남 페드루 드 아우칸타라 왕자가 체코의 귀족 여성과 결혼하면서 귀천상혼 논란이 일었고, 이때는 계승권을 포기하는 듯했으나 이자베우 사후에 부르봉-오를레앙 본가와 협상하여 동등결혼으로 인정받으면서 이를 번복하였다. 이자베우 본인은 생전에 차남 루이스 왕자를 후계자로 선언했다.] 두 계열로 나뉘어 있다. [[루이필리프]] 이후 본가의 수장 계보: [[루이필리프]] → ([[페르디낭 필리프]])[* 루이필리프의 장남, 루이필리프보다 일찍 사망하여 루이필리프의 장손 필리프가 계승] → 파리 백작 필리프 →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 기즈 공작 장[*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의 사촌동생] → 앙리 로베르 페르디낭 → 앙리 필리프 피에르 → 장 분열 이전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의 수장 계보: --루이--[* [[루이필리프]]의 차남] → 가스통 → (루이스)[* 가스통의 차남, 어머니 이자베우보다 일찍 사망하여 아들 페드루 엔히크가 계승] → 페드루 엔히크[* 루이스의 장남] → 바수라스 계통[* 형제 상속인 경우 같은 줄에 표기] : → 페드루 엔히크[* 루이스의 장남] → (루이스[* 페드루 엔히크의 장남] → 베르트랑[* 페드루 엔히크의 삼남.]) 페트로폴리스 계통 : → (페드루)[* 가스통의 장남] → 페드루 가스탕[* 페드루의 장남] → 페드루 카를루스[* 페드루 가스탕의 장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